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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Dead Rose - 5

by M0728 2025. 6. 23.

 d e a d   r o s e

  Another RicMin part of ROADS

 

                                              Written by birdie

 

 

 5.

 

  

 

 

                    『나중에, 다시 태어나면 때엔… 너랑 친구로

                       태어나지 . 지겨워.

 

                  정혁의 말에 민우는 광고를 보여주는 스크린 쪽으로 시선을 옮겼.

                정혁은 여전히 정신 차리고 헛소리다. 애초에 셋이 영화

                부터가 엽기적인 발상이었다. 문어발 같은 감정을 정리하기엔 아직

                 날씨가 너무 좋아, 그게 탈이다. 팝콘을 사러 혜성은 영화가 시작될

                 때가 되었는데도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정혁이

                 바보처럼 실실 웃기 시작했다. 소리도 없이 미소만 흘리며, 분주히 

                 자리를 찾아 좌석 번호를 확인하던 아가씨 하나가 정혁의 얼굴을

                 보더니 괜히 얼굴을 붉힌다. 새끼가 헛소리를 더니 드디어

                 돌아버렸나 싶어 민우는 다시 자리의 정혁을 쳐다 봤다. 정정,

                 한 자리 건너 자리의 정혁을 쳐다봤다.

                  『영화 같아. 너랑 , 나랑 혜성이, 혜성이랑 . 그리고 우리 .

                  『그 셋에서 나를 빼고, 이젠 너희 둘로 만들어서 영화 찍어.

                     사양하겠어.

                정혁이 또다시 키득대며 웃는다. 장내의 조명이 어두워지고 본격

               으로 영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웅장한 효과음을 내며 바로 옆에서

               벌어지는 사건인양 인식되는 영화, 가운데 아직 돌아오지 않은

               혜성의 자리, 그것을 사이에 두고 앉은 정혁과 민우. 효과음

               우리들의 현실. 설마 바보처럼 헤매고 있지나 않나 혜성이 걱정

               정혁은 기어코 몸을 일으켰다. 그런 정혁을 어둠 속에서도 바라보던

               민우의 입가에 자동적으로 달콤쌉쌀한 미소가 따라붙었다.

               돌아가, 그렇게 천천히 돌아가. 깊이 들어오지 않았으니깐 길을

               찾을 있겠지.

                 『헉…, 헉…. 영화가 대체 동시에 관에서나 상영하는지,

                    한참을 찾았어!

               혜성이 숨을 헐떡이며 잔뜩 상체를 웅크린 사람들에게 일일이

               사과를 하며 겨우 자리를 찾아 들어왔다. 혜성은 커다란 팝콘 상자

               음료수 개를 겨우겨우 떠안고는 털썩 자리에 앉았다. 사람들

               시끄럽다고 인상을 찌푸리든 말든 정혁은 기어코 혜성에게 바보

               같다는 대꾸를 해준다.

                『바보야, 전화해서 나오라고 하지 그랬어.

                『됐어, 귀찮아서 나오지도 않았을 거잖아. , 조용해,

                   뒤에 뭐래잖아.

               커다란 팝콘 상자를 가운데 앉은 혜성이 끌어안았지만 정작 팝콘

               먹고 싶다고 닥달하던 혜성은 입에도 대지 않고 영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영화를 보자고 우긴 것도 혜성이었다. 혁은

               팝콘 상자에 손목까지 담그고 장난을 쳐댔다. 나중엔 혜성도 상자

               속으로 손을 집어 넣어 정혁과 손장난을 쳐대느라 영화는 안중에도

               없게 됐다.

                  『마셔.

                둘의 손장난을 의미심장하면서도 유치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

                보던 민우가 캔을 따서 혜성에게 내밀었다. 영화에는 이미 관심이

                끊긴 혜성이 결국은 그런 민우의 손까지 잡아서는 상자 속으로 밀어

                넣었다. 뭐야, 바보 짓거리는. 민우가 다시 손을 잡아 빼려 하는 

                손 하나가 민우의 손을 잡았다. 끈적한 팝콘 부스러기들이 손가락에

                닿아 녹는 느낌은 충분히 불쾌했다. 끈적함 속에 닿은 온기

                황송했지만 자신의 것이 없었다. 그것이 정혁의 손임은

                보이지 않아도, 감촉 만으로도 있었지만 그런 비상한 재능

                내려준 하늘이 전혀 고맙지 않다. 정혁은 민우의 작은 손을 힘주

                잡았다가 일순간 굳어지는 민우의 얼굴을 보고는 다시 놓아주었.

                민우는 손을 털고는 차가운 음료수 캔을 잡았다.

                생각이 났다. 불과 전의 말도 되는 대화가.

 

                  『혹시라도 후생이란 있다면…, 사람만 사랑할 있는

                     심장으로 태어나고 싶어. ,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 태어나라.

                     친구도 가족도 아닌 완전한 타인으로. 어떻게 할래?

                  『난 어디라도, 어떻게라도 상관없어. 문정혁, 네가 존재하지

                     곳이라면 어디든.

 

                다신…, 내게서 사랑이란 찾지 . 사라졌고……, 없어졌어.

 

 

 

  생각보다 온전히 발길은 집으로 닿았다. 오늘 하루는 특별히 일도 없는데 올려다본 하늘엔 벌써 석양이 물들고 있었다. 그제서야 멀뚱히 두세 시간 동안 한강변에 앉아있다가 것이 생각났다. 아무 생각도 했던 같지 않다, 대체 시간 동안 하고 있었던 걸까. 몸에 진득하게 담배냄새가 배였다. 혜성이 아주 질색할 것이다. 그것 또한 웃긴 일이다. 혜성도 얼마간은 골초일 정도로 피워댔으면서 이젠 정혁의 방에서 담배갑만 나와도 난리다. 이대로 집에 들어가기엔 아쉬웠지만 다음 달이면 수능을 보는 학생으로서 약간의 양심의 가책이 들었다. 아파트 입구의 베이커리에서 봉지 가득 빵을 채우고 달려나온 우혁과 맞부딪친 것은 때였다. 하여간 펄쩍펄쩍 날아다니는 자식. 우혁은 정혁을 보자마자 단팥빵을 하나 꺼내 내밀었다.

 

  「너 주말 내내 독서실엔 코빼기도 비치더라?

 

  승호녀석 집에 가는 길에 손으로 없다며 꾸역구역 채운 봉지를 팔랑팔랑 돌리며 우혁은 사뭇 인생 포기한 사람 얼굴을 하고 있는 정혁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저녁 여섯시가 되자 아파트 내로 환하게 가로등 불이 켜진다.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밖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집으로 들어가는 시간도 당겨진다. 게다가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아파트 놀이터는 썰렁했다. 우혁이 요란스레 돌려대는 빵봉지를 보며 케익이나 사가지고 혜성이한테 갈까 정혁은 생각했다.

 

「그나저나, 민우 내놔라, 문정혁.

 

  「뭐?

 

  정혁은 의아함에 초연한 우혁의 얼굴을 쳐다봤다. 시시때때로 표정이 변화하는 풍부한 감성의 우혁이었지만 가끔은 전혀 감정을 읽을 없는 무감각한 얼굴도 해보이는 녀석이었다. 우혁은 난데없이 정혁의 옷깃을 잡아당기더니 정혁의 목으로 얼굴을 가져다 댔다. 이게 하는 짓인가 싶은 정혁이 발짝 뒤로 물러서자 우혁은 가까이 앞으로 다가와서는 기어코 킁킁거리며 정혁의 목덜미 부근의 냄새를 맡는다. 그러고는 푸하하 웃어버리는 모습이라니. 정혁의 표정은 굳이 살펴보지 않아도 뻔했다. 기괴하게 일그러진 잘난 얼굴.

 

  「더 이상 스토커는 아니지만, 팔자가 그런가? 의도한 아니었는데 어제 봤어, 정확히는 민우 끌고 택시에 올라타는 . 네가 잡아가는 봤고, 너한테는 아직도 민우 체취가 진득히 배어있고 그리고 돌아온 혼자. 민우를 어떻게 거야? 잡아먹었냐 기어코?

 

  우혁은 정혁의 배를 툭툭 쳐가면서 우스꽝스러운 소릴 연발했다. 하지만 날카로운 가시돋힌 말들, 그리고 순간의 우혁의 표정이 소름 끼치도록 민우와 닮아있었다.

 

  「이 늑대새끼. 배를 갈라서 민우를 꺼내야 할까? 그리고 안에 돌로 채워놔야지. 다신 그렇게 이쪽 저쪽 감정 흩뿌려서 괜한 사람 힘들지 않게, 심장까지 돌로 바꿔놔야겠어. 그런 면이 좋았던 적도 있지만, 이젠 봐주겠다.

 

  「…………. 노력하고 있어. 앞으론 노력할 거야.

 

  「그래? 정신차려, 아직도 눈에 멋진 놈이니깐 실망시킬 생각 말란 말이다. 혜성이 아까 진이랑 독서실 가는 모양이더라, 가봐. 점수 깎이지 말고.

 

  「고맙다, 매번.

 

  「느끼하긴. 그런데 민우는 정말 어딨어? 전화도 받던데.

 

괜히 녀석을 혼자 그렇게 놔두고 왔다는 후회가 들었다. 정혁은 혹시나 싶어 단축 다이얼 1 눌러보았지만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메시지만 연달아 울릴 뿐이었다.

 

 

 

 

  「그래서 동완이가 얼른 꺼내서 소파 쿠션 밑으로 숨겼대, 크크. 하여간 너무 순진해서 탈이라니깐?

 

  진이는 아까부터 동완의 하루 수난사에 대해 신나게 떠벌리느라 바빴다. 그러다 결국 선호에게 꿀밤을 맞았지만 여전히 정신 차리고 어쩌다 순진남 동완이 포르노 테이프를 부모님들한테 발각당했는지 소상하게 발설을 연이었다. 혜성은 진이 일부러 과장되게 자신을 위해 이러고 있음을 알고 최대한 기울여 듣는 척을 했지만 역시 마음은 다른 곳에 가있었다. 어제 집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건 확인해서 것이 아니었다. 정혁은 토요일 아침부터 이미 날의 일정을 자신에게 말을 해주었던 것이다. 하루 정도 민우와 함께 거라고. 잔인한 새끼, 차라리 말하지 말고 모르게 해버리란 말야. 어젯밤은 잠도 자지 못하고 공부만 했다.

 

  「어이, 신혜성. 서방님 오셨다.

 

   혜성이 참고서만 죽일 노려보고 있는데 진이 목소리를 낮추더니 혜성의 어깨를 살짝 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독서실의 휴게실 문을 열고 두리번거리는 정혁이 눈에 들어왔다. 자동적으로 선호도, 동완이도 따라서 일어나더니 알아서 자리를 피해주는 눈치다. 솔직히 정혁의 얼굴을 보고 싶지도 않았다. 이해한다고 말했고, 정말 그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마음은 그렇지가 않은 보면 생각보다 쪼잔한 인간인가라는 자학이 냉큼 마음 켠을 차지하고 들어온다. 보던 검은색 트레이닝 바지에 후드티셔츠 차림의 정혁이었지만 이상하게 평소와는 다르게 보였다. 정혁은 멀뚱히 휴게실 안으로 들어오더니 혜성의 팔목을 잡았다.

 

  「그래서, 놀았어?

 

매몰차게 혜성은 그런 정혁의 손을 쳐내며 말했다. 이런, 말투가 따지는 투로 나가버렸다. 정혁은 잔뜩 화가 토라진 혜성을 보며 쓰디쓴 웃음이 나왔다. 혜성은 항상 솔직한 편이었다. 어지간하지 않은 이상, 느낀 대로 표정을 짓고 생각하는 대로 말을 하고 행동을 한다. 차라리 편이 정혁에게도 편했다. 지금도 이렇게 화가 났다는 것을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고마웠다. 적어도 지금 상대방의 상태가 어떻다는 것을 정보로 얻을 있으니깐, 이걸 그럼 어떻게 풀어줘야 한다는 것도 대강 파악이 되었다. 전혀 그렇지 못한 정반대의 인간도 있다. 인간은 정혁에겐 아웃 오브 컨트롤. 고운 얼굴선을 한껏 일그러뜨린 혜성에게 웃어주었다. 의외인지 다소 당황을 하며 일단 경계를 흐트러뜨린다. 정혁은 다시 혜성의 팔목을 잡았고 이번엔 혜성도 잠잠히 정혁을 뒤따랐다.

 

  「잘못했어.

 

  독서실 벤치로 나오자마자 정혁은 대뜸 무릎부터 꿇고는 잘못했다고 말했다. 지나다니는 사람은 없었지만 혜성은 당황해서 그만 정혁부터 일으켜 세우기 위해 안달을 했다. 하지만 정혁은 굳건히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용서해달라고 할게. 사실 지금도 힘들어, 지금까지도 힘들었어. 녀석 때마다 보는 것처럼 마음 아팠고 힘들었어. 너한테 하는 것처럼 따뜻하게 안아주지도 못하고 같이 웃을 수도 없어서 너무……. 하루만 녀석하고 같이 하고 싶었다. 전에 어울렸던 것처럼 아무 생각 없이, 아무 감정의 방해 없이 같이 하고 싶었는데…. 네가 기다리고 믿고 있다는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같아. 그냥, 녀석에겐 내가 다가갈 없고 그래서도 된다는 깨달았어. 그리고 함께 해서 편안한 사람이 너란 것도.

 

  「……민우는 어때.

 

  「독한 녀석이야. 걱정하지 않을 거야 이젠.

 

  「설마 민우 앞에서도 이렇게 아니겠지? 문정혁, 이민우만 만나고 오면 우냐, 이리 와봐. 누가 볼까 무섭다, 평소 카리스마 무너진다구.

 

  혜성은 정혁의 이런 모습에 한없이 약해지고 말았다. 커다란 눈에서 그만큼이나 커다랗게 뚝뚝 떨어지는 눈물에 혜성의 마음도 그만큼 애절하게 내려앉았다. 이번엔 용서해주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번엔 정말 이민우도 너도 가만두지 않으려고 했어. 속으로 너희 둘이 잘못되길 바래놓고도 순식간에 이렇게 나쁜 새끼였나 싶어서 자신이 얼마나 한심했던지. 그만큼 좋아하고 사랑하는 걸까.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민우로부터 어떻게 지키고, 이민우에게 어떻게 다시 돌려보내야 하는지 정말 모르겠어.

 

  「왠 케익이야 근데?

 

  정혁을 끌어안고 한참을 서로의 생각을, 감정을, 체온을 공유했다. 다른 녀석들 몰래 독서실을 빠져나와 오늘 하루는 일찍 공부를 끝마치고 둘은 정혁의 집으로 향했다. 정혁은 아까 사둔 케익을 꺼내 아무렇게나 들어있던 초를 꺼내어 꽂았고 불을 붙였다. 무슨 날이냐고 연신 묻는 혜성이길래 정혁도 사귄지 250일이 날이라고 갖다붙였다. 생각외로 혜성은 날짜가 그럴 했는지 너무 쉽게 덜컥 믿고는 감동한 눈치였다. 혜성은 동안 눈을 감더니 이내 후욱 숨을 불어 초를 껐다. 혜성이 눈을 뜨자마자 정혁은 손안 가득 생크림을 묻혀서는 혜성의 얼굴을 엉망으로 만들어놨다. 꺄악 소릴 지르며 혜성이 침대위로 넘어졌고 정혁은 그런 혜성의 팔목을 잡아 머리위로 올리고는 눈을 맞추었다.

 

  「야 눈에 닦아줘, 눈이 매워.

 

  팔목이 아프다고 엄살을 부리던 혜성은 정혁이 꿈쩍도 안하자 이번엔 눈이 맵다고 핑계를 댔다. 하지만 그게 화를 불러와 정혁은 혀로 얼굴 위의 생크림을 핥아먹기 시작했다. 으윽, 간지러! 간지럽다구, 으악. 혜성은 감질나는 감촉에 몸에 소름이 끼쳤다. 입술 주변에 묻은 생크림을 핥은 정혁이 한참을 혜성의 작은 입술을 바라보다 이윽고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정혁을 밀쳐내기 위해 발길질을 하던 혜성도 쓸데없는 반항을 멈추고 정혁의 목에 팔을 감아 끌어안았다. 키스는 생크림 때문인지 최고로 달콤했다.

 

  「아까 끄기 전에 소원 빌었다.

 

  「뭐라고 빌었는데.

 

  「너랑 너무 벌주지 말라고. 민우도 행복하게 해주세요,라고.

 

 

 

 

술은 마시면 된다고 했다. 누가? 바로 어제 문신해주던 남자가. 문신이 동안은 술은 절대 된다고 했는데 지금 이렇게 목구멍 안으로 타들어갈듯 넘어가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름 따위 아는 것은 없었다. 아무렇게나 간판이 맘에 들어 찾아 들어간 곳은 멋드러진 술집이었고, 사람들은 춤을 추고,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민우도 사람들 속으로 섞이고 싶을 뿐이었다. 그래서 사람들과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누었고 술을 건네는 아가씨를 마다하지 않았으며 같이 춤도 추었다. 아쉬운 떨어져 나가는 늘씬한 여자의 골치 아픈 향수 내음에 취해 또다시 술을 들으키려 젊은 남자 하나가 넥타이를 느슨하게 하며 민우 앞에 앉았다.

 

  「설마 혼자 마시려고 아니겠죠?

 

모금 맥주를 들이키려는 민우에게 남자는 잔을 내밀었다. 민우는 가득 맥주를 따라 주었고 거품이 넘쳐 남자의 손을 적시었다. 하지만 개의치 않고 남자는 웃더니 번에 잔을 들이켰다.

 

  「이상하네, 여기 게이바 아닌데. 뭔가 착각한 아닌가요?

 

  취했을 없는데 목소리가 자신의 같지 않게 사근사근 녹아 나온다. 남자는 다시 웃는다. 웃는 모습이 제법 근사하다. 여기가 게이바고 남자가 게이여도 크게 상관없겠단 생각이 정도로. 이런 제길, 웃는 모습이 어째서 맘에 들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육감적인 입술과 입이 만들어낸 서구적인 스마일 라인. 살짝 일그러지는 송아지 같이 . 민우는 연거푸 이름도 모를 독한 술을 들이마셨다. 미처 넘어가지 못한 술이 턱을 타고 흘러 내렸다. 남자는 티슈를 들어 민우의 목가를 지그시 눌렀고 민우는 남자의 팔목을 잡았다.

 

  「지금 꼬시는 , 맞아?

 

 

  「흐읏.

 

남자는 충분히 매너가 좋고 젠틀했지만 민우는 남자의 손이 닿기만 하면 고통스러웠다. 잠들어있던 몸의 감각이 통렬한 고통을 맛보기 위해 일부러 단잠을 깨고 예민해져 있었다. 제정신인가, 이름도 모르는 새끼랑 뒹굴다니, 대체 하고 있는 거지. 절로 욕이 나오고 한숨이 나왔지만 어차피 눈을 감아도 정혁 생각 뿐이었다. 그러느니 차라리 어떤 방식으로든 잠시라도 잊고 싶었다. 처음이야? . 게이 아니지? . 좋아하는 따로 있는 거야? . 그럼 이름 부르게 해줄게. . 너보다 덩치 ? . 남자는 말이 많았고 민우는 대답하기도 귀찮았다. 좋을 만큼 취해 있었기에 기분은 좋았다. 이성과 감성이 배제된, 그야말로 단순하기 이를 없는 기분만 좋았다. 마치 마약이라도 것처럼 적당히 부웅 떠있는 기분, 그래서 아무도 손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고 올려다볼 것만 같아서, 그래서 마냥 기분이 좋았다. 남자는 처음이냐는 대답에도 무표정하게 그렇다고 대답하는 민우의 얼굴을 보며 잠시 후회를 했지만 놓치기엔 아까운 분위기라고 생각했다.

 

남자의 손길이 점점 생각지도 못하게 대범해져 간다. 적당히 술에 찌든 몸은 문신한 부위의 고통 마저 달콤하게 느끼게 만들어 주었고 오히려 존재 조차 모르는 남자가 편하게 생각되었다. 어차피 후면 다시 길거리에서 지나쳐도 모르는 그런 사람이 테니깐. 스스로에게도 이렇게 천박한 구석이 있었나 싶어 신기하기도 했다. , 원래 이런 부류가 아냐. 빌어먹을 문정혁 새끼 때문에 이래. 새끼만 아니면 달라질 것도 애초에 없었는데, 씨발새끼, 개새끼, 씹새끼, 좆같은 새끼.

 

연달아 욕만 해대는 민우를 보며 남자는 흥미롭다고 느꼈다. 엉덩이에 문신까지? 호오, 제법 노는 놈인가. 벗겨놓고 보니 전형적인 소년 몸이었다. 플로어에서 미친 흔들며 춤출 때부터 찍어놨었다. 이런 새끼가 게이바에 있었다면 아마 그날 제대로 바를 빠져나가기엔 글렀을 것이다. 그나마 나한테 걸린 다행이라고 생각하라고, 친절하니깐. 키스에도 서툰 반응, 가슴에서부터 아랫배까지 이어지는 질척한 애무에도 힘들어했다. 스물도 남자애의 그런 생각보다 순진한 반응에 남자는 흥분을 했고 결국은 자극을 견디지 못해 민우의 몸에 흔적까지 표식처럼 남겨버렸다. 달큰한 살내음이 나는 목덜미를 깨물어 피까지 맺히게 해도 민우는 무표정했다. 혹시 불감증인가 싶었지만 본격적으로 관계에 들어가자 눈가가 쾌락과 뒤섞인 고통으로 붉게 물들더니 이윽고 민우는 관계 내내 어이없을 정도로 펑펑 울어버렸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도 방안에 진득하게 자리잡은 비릿하고 음산한 체취에 민우는 인상부터 썼다. 남자는 민우 앞으로 택시비라고 돈을 내밀었다. 협탁 위의 스탠드를 들어 남자에게 집어 던졌다. 스탠드의 등이 깨져 바닥이 자잘한 유리 조각 투성이 되자 남자는 황당함에 웃었다.

 

  「상대 이름이, 문정혁? 엄청나게 불러대던데.

 

  씨발. 나지막하게 민우는 욕을 내뱉었고 남자는 부서진 스탠드 값까지 계산하고 나가겠다며 방을 나섰다. 갑자기 서러움이 복받쳤다. 그렇게 정사 내내 울어댔으면서도 지랄 맞게도 울음이 났다. 평생 참아온 눈물샘이 오늘은 터지는 날인가보다. 정혁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전화기를 들고 전화를 하면 금방이라도 데릴러 오겠다고 같아. 몸을 일으켜 욕실로 향하는데도 낯선 감각들이 아우성을 질러댄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내가 일찍 다니랬잖아. 지금이 시냐.

 

아버진 오늘도 들어오시려나. 택시에서 내려 올려다본 집엔 여전히 사람 기척 하나 없이 어두웠다. 열쇠가 있길 바라며 주머니를 뒤적거리고 있는데 전과 똑같은 상황. 정혁의 목소리. 우스운 잔소리. 씨발, 하필 이런 모습일 . 민우는 뒤에서 들려오는 정혁의 목소리가 전혀 반갑지 않았다. 하지만 최악이었던 것은,

 

  「너 주려고 맛있는 사왔다.

 

뒤이어 들린 혜성의 목소리였다. 제발 돌아가줘. 정혁이 지금 자신의 몸상태를 알아 챈다면 어떤 난리가 일어날지 충분히 예상이 갔기에 그랬다. 하지만 주책 맞게도 자동센서 등은 사람의 마음까지는 인지하지 못한다. 다리에 힘을 주어 겨우 현관에 기대선 민우를 환하게 드러내 준다.

 

「너 마셨어? 마시면 된다고-

 

정혁의 말이 끊기었고 아주 순간의 찰나에 위협스러운 침묵이 강요되었다.

 

  「너…. 이민우, 지금 이게…….

 

백열등에 드러난 민우의 모습에 정혁은 순간적으로 뒷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옆에 혜성이 있다는 것은 순간 망각해 버렸고 민우의 멱살을 잡아 쥐었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사고의 연장이란 것은 이런 순간 만큼은 피해가고 싶었는데, 재빠르게 앙큼한 뇌는 필요 없는 회전까지 해서 결과물을 안착시켜 놓았다. 씨발. 술냄새와 뒤섞여 은근한 정사의 내음이 민우에게서 물씬 풍겨 나왔다. 붉어진 눈시울과 목덜미의 피멍 어린 잇자국까지. 정혁은 민우가 입고있던 맨투맨의 부분을 거의 찢어놓다시피 힘껏 잡아당겼다. 그제서야 혜성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정혁을 말리기 시작했지만 정혁은 완전 폭주 중이었다. 이렇게 문정혁이 광분하는 것을 적도 없었다.

 

「문부터 열어, 씨발 새끼야!!

 

  아파트 복도를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독기 어린 목소리로 정혁은 소릴 질렀지만 민우도 지지 않고 노려보았다.

 

  「야, 민우 상태도 좋은데, 놓고 말해!

 

  「넌 가있어!

 

  「아냐, 혜성아 새끼 데리고 같이 . 지금 앞에서 새끼 데리고 없어져 버려, 제발.

 

「닥쳐!

 

정혁이 분노에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들어 민우의 뺨을 갈기었다. 혜성은 놀래서는 필사적으로 정혁을 민우로부터 떼어놓으려 노력했지만 막무가내였다. 뺨을 맞고 잠시 멍해 있던 민우가 발을 걷어차 정혁을 뒤로 밀쳐버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 주방으로 들어가 찬물을 꺼내었다. 갈증에 미칠 같다. 그런데 정혁이 저벅저벅 발소릴 내며 따라 들어온 모양이다. 물을 마시고 있는 민우의 팔을 거칠게 잡아 당기느라 유리컵이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졌다. 날카로운 소릴 내며 컵은 깨졌고 소리에 놀래 혜성이 얼른 달려 들어왔지만 둘은 완전히 원수지간인 서로를 죽일 노려보고 있었다.

 

  「뭐하고 왔어!

 

애써 평정심을 지키려는 이가는 목소리로 정혁이 물었다. 아예 정혁의 화를 돋우려는 민우는 태평하게 웃어보였다. 비웃음. 명백한 의도를 알고 있음에도 완전히 넘어가버렸다. 늘어진 티셔츠 사이로 울긋불긋한 민우의 가슴을 경악에 눈으로 혜성은 바라보았다.

 

  「너도 해봤으니 아냐? 자고 왔어. 남자랑.

 

정혁의 호흡이 적나라하게 귀에 들릴 정도로 거칠어졌다. 사이에는 깨진 유리 조각들이 위험하게 널려있었고 맨발이었다. 그게 무엇보다 불안해 혜성은 얼른 젖은 수건을 위해 욕실로 들어갔다.

 

  「차라리 죽어, 새끼야! 죽일 셈이야!? 대체……, 네가 이러면 어떡하라고!!

 

  정혁은 거의 울부짖었다. 불길했던 예감이 적중했음을 말해주는 민우의 대답과, 대답을 때의 떨리던 목소리와, 애써 무표정하려 노력하는 녀석의 얼굴과 쥐어진 주먹. 전율- 비통함의 전율.

 

  「내가 이러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꺼져버려. 혜성이 데리고 나가란 말야! 신경 쓰지마! 당분간 내가 남자랑 헤프게 뒹굴든, 학교에 가지 않든 신경 쓰지마! 제발, 잊으려고 하는 방법까지 네가 제한하려 들지 말란 말야! 숨막혀, 씨발, 숨막혀!

 

  민우의 지친 기색이 역력한 절규에 정혁은 심장따위 뭉개져도 이것보다는 고통스러울 거란 생각까지 들었다. 당장이라도 다른 놈의 흔적을 달고 있는 몸뚱아리 위에 흔적을 남기고, 입술이 이름만 외치게, 눈도 나만 바라보게 만들고 싶었다. 목을 비틀면 다신 그러겠다고 고분고분 나올까. 알아? 하루만 듣겠다고 했었지, 그럼에도 말을 하나도 듣지 않았어. 정말 구제불능이야. 이렇게 망가져서 오면 내가 멀리할 같았어? 혹시라도 너에게 실망할 같았냐고. 바보같은 새끼.

 

흐느끼며 식탁 켠을 팔로 지탱하고 서있는 민우가 금방이라도 쓰러질 같아서 끌어안아주려 정혁이 발짝 다가갔다. 하지만 민우는 이내 발짝 뒤로 물러섰다. 수건에 물을 적셔 유리 조각들을 치우려 하던 혜성이 이내 소릴 질렀다. 민우가 갑자기 유리 조각 하나를 들어 주먹 움켜쥔 것이다. 금세 검붉은 핏방울이 뚝뚝 연회색 타일위로 떨어졌다.

 

  「말 좆나게 듣지, 문정혁. 지겨워, 정말 지겹다. 내가 만만해? 너랑 혜성이 앞에서 이런 모습까지 보여주고 싶지 않단 말야. 돌아가라고 돌아가. 알잖아, 얼마 후엔 아무렇지도 않게 마음 다스려서 다시 앞에 있다고 믿잖아. 제발. 지금 아프고 힘들다. 여기도 아프고 다른 곳도 아파. 아프고 싶지 않아. 나도 아픈 싫어. 지금 이렇게 흘리고 있는 손도 아파. 네가 앞에 있으면 힘줄 거야. 손가락이라도 잘려나가면 네가 들으려나.

 

  금방이라도 아무 미련 없이 일을 저지를 같은 민우의 얼굴은 무섭도록 차분하고 모든 달관한 것처럼 보였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에 핏방울이 튀어 섬뜩했다. 정혁은 숨이 막힐 같았다. 숨도 같이 속이 쓰렸다. 맙소사, 이러다 죽을 같았다. 어느새 혜성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울고 있었다. 혜성은 민우의 주먹 손을 바라보다 정혁의 팔을 잡아 끌었다. 정혁은 눈물 범벅이 민우의 눈을 마주보았다. 젠장, 민우가 눈을 감고 유리 조각을 떨어뜨렸다.

 

 

 

혜성은 감정을 잃고 말을 잃은 사람처럼 멍하게 있는 정혁을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어떡해, 이민우 어떡하지? 문정혁, . 무서워, 네가 말을 하지 않으면 무섭다고! 정혁은 어깨까지 떨어가며 흐느껴 우는 혜성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도 없었다. 결론을 것도 없었다. , 다가갈수록 상처만 입는다. 민우는 자신이 다가갈수록 아파하고 다치기만 했다. 그럼, 멀어지면 민우는 괜찮을까? 놀란 탓인지 사고는 놀랍도록 단숨함만을 발휘하고 있었다. 민우 눈에 보이지 않으면 되는 걸까. - 민우 앞에 나타나지 말아야겠다. 생각만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민우, 엉덩이에 문신했다. 비밀인데, 너만 알고 있어.

 

  잠도 이루고 뒤척이다 새벽 즈음에 난데없이 정혁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혜성은 놀래서는 벌떡 몸을 일으켰지만 다시 정혁에게 끌어 안겨졌다. 정혁은 혜성의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정혁의 호흡이 이마에 흩뿌려지자 혜성은 눈을 감고 같이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정혁이 웃는다. 혜성도 따라 웃어버렸다.

 

  「나도 비밀 하나 말해줄게 그럼. 며칠 전에 엄마한테 우연히 들은 건데, 민우- 졸업하면 뉴욕으로 간대. 거기서 공부시킬 거라고 민우 어머니가 불렀고, 민우 아버지도 허락했대. 너무 외로움을 타서 아무래도 엄마랑 지내는 좋겠다고. 그래서 수능 준비도 안하는 거라고 그러더라.

 

  혜성의 머리카락 결을 쓸던 정혁의 손짓이 멈추었다. 맞닿은 정혁의 심장이 멈춰버린 아닌가 싶어 혜성은 얼른 정혁의 가슴께로 귀를 가져다 댔다. 역시, 상당히 놀라고 당황한 눈치였다. 그나마 어둠이라서, 얼굴의 미세한 표정까진 알아볼 없어 다행이었다. 머뭇거리며 정혁은 부르튼 입술을 혀로 적시며 물었다.

 

  「……갈 거래?

 

  「응……. 정혁아.

 

  「………….

 

  「민우, 잡지 . 민우는 사랑 같은 힘들대, 안할 거래. 얼마 전에 같이 얘기했었어. 네가 목숨 걸어도 소용없어 민우는. 힘들게 하지 말고, 정말 사랑하면 놓아줘. 모르지? 너만 힘들고 민우만 힘든 아냐. 나도 힘들어.

 

혜성의 한탄 섞인 목소리엔 두려움과 안쓰러움이 묻어났다. 정혁은 혜성을 힘주어 껴안았다. 그리고는 혜성의 이마에, 감은 위에 그리고 입술에 키스했다.

 

 

 

 

 

  수능은 무사히 끝마칠 있었다. 놀랍도록 평소보다 좋은 컨디션이었다며 시험을 끝마치고 모이기로 학교 뒷뜰에 가장 먼저 나타난 동완은 선호와 진에게 자랑을 했다. 선호의 무표정을 봐서는 그럭저럭 괜찮게 같았고, 진은 반에 아는 새끼들만 줄줄이라 모의고사 보는 기분으로 봐서 망친 같다고 푸념을 했다. 정혁은 그런 녀석들의 수다를 흐뭇하게 들어주며 혜성이 나오길 기다렸다. 특유의 쨍쨍거리는 목소리가 들리더니 승호와 우혁까지 나타났는데도 사람이 아직 오지 않았다.

 

  「뭐야, 자식들. 설마 망쳤다고 벌써 옥상으로 달려 올라간 아냐? 이리 오지, 추워 죽겠다 정말.

 

  진이 시큰둥하게 궁시렁대자 재수없는 소리만 작작 한다고 선호가 일침을 놓았다. 하지만 이내 둘은 그럴 위인이 된다는 우혁의 말에 다들 자지러지게 웃고 말았다. 교문 앞은 장사진이었다. 시험을 마치고 나오는 아이들을 끌어안는 학부모들, 식구들, 선후배들. 저걸 어떻게 뚫고 나가나 걱정이 한가득이라고 동완이 불평을 해대자 차라리 민우랑 혜성이나 늦게 나오라고 모두 말을 바꾸었다. 하지만 순간에 사이 좋게 둘이 걸어왔다. 혜성은 정혁을 보마자마 입에 물린 담배부터 빼서 바닥에 비벼 껐다. 정혁은 혜성의 옆에 있다가 우혁하고 마디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민우를 바라보았다. 실상 민우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상당히 오랜만이었다. 보지 않으려 노력했더니 우습게도 작은 생활권 안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동네에세도, 어디에서도 둘은 서로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치열하게 노력했다. 노력의 대가는 상당했다. 뒤풀이를 위해 택시를 나눠 타면서도 민우는 애써 정혁을 피하지 않았다.

 

이렇게 모두가 웃는 얼굴로 한자리에 모인 것은 지난 여름 바닷가 이후론 처음이었다. 시험을 망치든 찍었든 모두가 속시원한 얼굴로 그간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술집 안은 시끌벅쩍해서 소리로 말하지 않으면 바로 사람도 알아들을 지경이었다. 강추위라며 두껍게 입고가라고 해서 최고로 두꺼운 스웨터를 입고있던 정혁은 가게 안이 답답해 혜성 몰래 담배를 들고 나왔다. 서울의 야경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이라 그런지 야경이 기가 막혔다. 담배를 입에 물려는데 누군가 불을 붙여준다. 고마워, 그리고 고개를 드는데- 민우였다.

 

  「시험 봤냐?

 

  민우가 담배를 입에 물며 물어본다. 정혁은 대답 대신 얼른 민우의 담배에도 불을 붙여주었다. 어이없이 웃음이 나왔다. 담배만 보면 뺏는 하나, 붙여주는 하나. 그것 기구하구만. 둘은 한참을 대화 없이 야경을 내려다보며 담배만 피웠다. 그렇다고 전처럼 침묵이 불편한 것도 아니었다. 구구절절한 설명을 수는 없어도 어딘지 편안하고 당연하다고 느껴지는 침묵이었다.

 

  「궁금한 있어.

 

꾸물꾸물 밀리는 도로를 내려다보며 정혁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민우는 담배를 비벼 껐다. 정혁의 목소리는 밤에 들으면 정말 멋스럽다. 밤의 축축한 열기가 정혁의 미성에 묻어나 뭉게뭉게 귓속을 헤매는 기분이었다. 금방이라도 귀가 같이 추운 겨울에도 그것만은 여전했다. 목소리, 너의 감미로운 목소리.

 

  「문신은 됐어?

 

  「어, 덕분에. 아무도 보여줬으니깐, 걱정은 마라. 약속 지킬게.

 

민우가 농담인양 웃으며 대답했다. 장난스러움에 맞받아쳐 보여달라고 할까 하다가 아직 그럴 정도는 아니라고 파악한 정혁이 그냥 미소만 지었다. 오래간만이야. 그동안 지냈어? 하면서 지냈어? 많이 힘들었어? 정말 미국 거야? 묻고 싶은 것은 끝도 없이 줄줄이 튀어나오려 했지만, 이번만큼은 혜성의 충고대로 가슴속에 고이 간직하기로 했다. 그래, 그게 좋겠다. 마지막 질문 하나.

 

  「그거, 카디쉬- 미처 물어보지 못했는지. 무슨 뜻이냐고.

 

정혁은 민우의 몸에 새겨진 문자를 기억해냈다. 민우는 대답을 해줄까 말까 고민을 해야 했다. 정혁은 진심으로 궁금한 표정이었다. 손이 금세 차가워졌다. 수능날은 유독 춥다. 민우는 차가워진 손을 바지 주머니에 꽂아넣었다. 그리고는 수천 대의 차들이 똑같이 만들어낸 헤드라이트의 잔상에 도취된 한참을 바라보다 대답했다.

 

  「죽은 자를 위한 기도문.

 

  「……누가 죽었는데?

 

  「내 치열했던 첫사랑. 가슴 속에 철없이 머물던 사랑. 내가 사랑한 문정혁. 문정혁을 사랑했던 이민우. 그리고, 네가 아흔 아홉 송이의 장미.

 

 

 

 

 

 

 

 

 

                           『나도 미국이란 나라를 가봐야겠어. 대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결국 곳으로 떠나 버리는지 궁금해.

 

                       정혁이 미국으로 출국하는 아침 정혁은 민우를 만나서 힘껏

                     껴안고 작별의 포옹을 나누었다. 민우는 못마땅하다는 미국에

                     나중엔 가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중학생이 텐데도 민우는

                     아직도 작고 아이 같았다. 정혁은 품에 들어온 민우를 끌어안은

                     채 키득거리며 웃었다. 민우와 헤어지는 것은 슬펐지만 슬프다는

                     것을 녀석 앞에서 드러내긴 싫었다. 그러면 왠지 슬플 같아

                     애써 아무렇지 않은 , 맘만 먹으면 내일이라도 다시 만날 있는

                     것처럼 최대한 무덤덤해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어디서 또 싸우고

                     왔는지 손마디가 까져있다. 내가 빨간약 바르라고 했잖.

                     아버지한테 발라달라고 . 내가 아니면 이거 누가 신경 써주나?

                     그러니깐 아예 싸움을 하지 . 나중에 만났는데 또 이러면

                     정말 화낼 거다? 정혁은 민우에게만큼은 다른 친구들에겐 보여주지

                     않았던 면을 보여주었다. 헤어지는 날까지도 소리라니. 민우는

                     질끈 눈을 감고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이렇게 떨어져있는 거니깐 하나도 슬프지? 너랑 나랑

                          평생 친구하자, 민우야. 정말 좋잖아.

 

                        정혁의 말에 대뜸 좋다고 앞뒤 것도 없이 대답할 알았던

                       민우가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주저한다. 정혁은 속으로

                       실망했다.

 

                         『사람 일이란 모르는 건데, 덜컥 그런 약속을 어떻게 하라?

                         『으, 그런 알았는데, 째째하다? 말어, 나도 친구 .

                                           

                          정혁이 섭섭하다는 기미를 보이자 민우가 당황하며 얼른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 엄마 아빠도 그랬단 말야. 사람 감정이란

                              정말 기가 막힌  거라서 언제 어떻게 변할 지도 모른다구.

                              네가 싫다는 말이 아니라.

                           『에, 우리 감정이 변해봤자잖아. 바보자식.

                              우리가 설마 이혼하겠어? 그런 없을 거니깐 걱정 .

                              빨리, 말해봐. 죽을 때까친구 하는 거라고.

 

                              민우는 난처한 잠시 고민에 빠졌고 정혁은 싱글벙글 웃으며

                            민우의 어깨를 살짝 깨물어 대답을 재촉했다.

 

                              『그래, 평생 친구하자, 됐냐?

 

                             못 말리겠다는 항복했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민우가 대답하자

                             정혁은 입을 찢으며 활짝 웃었다.

 

                                『너 변하기 없기야.

                                『너나 변하지 .

                                『내가 미국에서 돌아와도?

                                『알았어, 친구할게. 친구만 하자, 너랑 .

 

 

 

  

                                                                     《終》

 


 

 

그러니까 정혁아!! 친구하자고 하질 말았어야지..

 

릭셩을 가장한 릭민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던 로드의 속편일겁니다.

오랜만에 읽는데 새삼스레 가슴이 아파옵니다.

이제는 커플에 목숨거는 것도 없지만은 

좋아하는 커플의 좋은 팬픽은 참 고맙지요.ㅎㅎ

 

버디님의 팬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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