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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Dead Rose - 1

by M0728 2025. 6. 23.

     

시작과 끝은 기억 속에 갇혀 감히 서로의 입을 통해 나오지 못했다.

남들의 것처럼 달콤하지도, 어렴풋하지도 않았다.

쌉쌀하고 잔인한, 그리고 우정에 갇힌 사랑이란 것의 어설픈 시작.

 

 

 

 

 

  이십대 후반의 여담임은 당시로써는 상당히 진보적이고 진취적인 사고방식으로 학급운영을 하고 있었다. 일률적으로 줄을 바꾸는 것도 아니고, 낭만적이지 못하게 제비 뽑기로 운명의 짝을 결정하는 방식도 아니었다. 달마다 남학생과 여학생이 번갈아가며 자신이 같이 앉고 싶은 이성을 교탁 앞으로 나와서 발표, 혹은 고백하는 형식이었던 것이다. 비록 5학년이 어린 아이들이었지만 짝을 바꾸는 날이면 흡사 선이라도 보는 것처럼 다들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정혁의 반은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4명이 많았다. 따라서 파트너를 찾지 못하거나, 아니면 자신이 지적한 파트너로부터 거절을 받은 비운의 명의 남학생은 여학생과 같지 앉지 못했다. 그것도 무려 동안을.

 

  성격이 그다지 활발하고 적극적이지 못한 정혁으로서는 짝을 바꾸는 날이 되면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또래의 다른 아이들보다 키도 컸고 얼굴도 잘생겨 여학생들은 다들 정혁과 앉지 못해 안달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남학생이 여학생을 뽑는 순서가 되면 정혁은 짜증스러웠다. 반에서 가장 예쁘장하고 인기가 많은 여자아이 하나가 아까부터 줄줄이 다른 남학생들의 고백에도 아랑곳 않고 남아있었다. 말없이 앉아 이번엔 누굴 뽑아야 하나를 생각하며 최대한 귀찮은 일을 만들어내지 않으려 정혁이 노력하고 있을 뒷문이 열리며 지각을 소년 하나가 조용히 들어와 털썩 자리에 앉았다.

 

  아이답지 않은 차가운 분위기의 얼굴에 눈에 힘이 잔뜩 들어간 아이를 보면서 정혁은 하얀 얼굴의 소년의 이름이 이민우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담임도 아이들도 짝을 뽑는 이벤트에 심취를 했던지 아무도 민우가 지각을 것에 신경쓰지 못했다. 정혁은 멀뚱히 앉아 아이를 바라보았다. 바닥에 가방을 떨어뜨리듯 내던진 아이는 의자에 앉더니 잠시 망연자실 밖을 쳐다보았다. 정혁의 차례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담임이 크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정혁도, 밖을 보던 아이도 순간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제서야 정혁은 아이의 얼굴이 온통 눈물범벅이라는 것을 알았다. 저렇게 조용히 울다니. 도대체 무슨 일일까? 담임이 다시 자신의 이름을 불렀고 정혁은 다소 흥미로운 기분에 휩싸여 교탁 앞으로 나갔다. 여자 아이들의 이목이 전부 정혁에게 집중이 상태에서 정혁은 다시 밖으로 시선을 옮긴 아이를 바라보다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민우요, 이민우.

 

  정혁의 대답에 여학생들은 어이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남학생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그제서야 아이는 자신을 바라보았다.

 

 

 

 

 

 

 

 

 

 

 

 d e a d   r o s e

  Another RicMin part of ROADS

 

                                              Written by birdie

 

 

 

 

 

 

 

 

 

 

 1.

 

 

 

『어느 여름날 아침, 그랬듯 골목 한가운데서 보았다.

이상하게도 눈을 의심해야 했다.

낯익은 옷에 낯익은 머리, 그리고 낯익은 얼굴을 하고 있었음에도

너의 표정은 너무도 내게 낯설게 다가온 것이다.

어느 순간 갑자기 얼굴을 당당히 마주볼 없음을 깨달았다.

나른하게 쏟아지는 햇볕을 그대로 받아주며 반짝이고 있는 너의 머리칼도,

향해 가늘게 휘어진 너의 눈꼬리도, 덩달아 일그러진 너의 눈동자도,

여름날 아침 내게 너무도 충격적인 감성으로 다가왔다.

골목 한가운데 그랬듯 향해 비스듬히 서있는 네가

치의 틈도 주지 않고 심장을 가로채 버렸다.

숨도 없게, 어떻게 일인가 가늠해볼 수도 없게.

 

 

 

 

 

 

  매번 같은 소리, 매번 같은 표정, 매번 같은 행동.

 

  지겹다. 이렇게 지루하게 너와 내가 설전을 벌일 생각지 못했다. 정혁은 민우의 흐트러짐 없는 표정에 숨이 막혀오는 겨우 참아내고 물었다. 바보 같게도 목소리가 약간 흔들렸다.

 

  「날 사랑한다고?

 

  「……거짓말이었어.

 

  다시 뒤를 돌아 무심하게 걸어가는 민우를 보며 정혁은 그냥 바닥에 주저앉아 울어버렸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럴 눈물도, 마음의 여유도 없다. 특히 민우 앞에선 자신이 그렇게 무너져서는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멀어지는 민우의 뒷모습을 보며 정혁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야, 괜찮아?

 

  그리고 다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생각한다. 다시 내게 틈을 내보이지 않고 멀어져 가려 하는 거냐.

  심지어 꿈에서도 민우는 멀어져 간다. 꿈에서의 민우는 현실의 민우보다 잔인하고 무심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가중된 3 스트레스에 허덕일 틈도 없이 정혁은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더위가 꺾이고 가을인 물들 준비를 하는 단풍나무의 공포스러운 잎들을 바라보다 잠이 들었고, 그리고 그보다 공포스러운 꿈을 꾸고 옆에서 자신을 뒤흔드는 혜성에 의해 잠이 깼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꿈에서 민우의 악몽을 꾸고 나면 악몽을 현실에서 깨주는 사람은 혜성이었다. 정혁은 멍하게 혜성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더워? .

 

  「아……. 시야?

 

  10 조금 넘었어. 그만 갈래?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독서실에 들러 혜성과 공부를 하던 중이었다. 혜성이 옆에서 열심히 문제집을 푸는 것을 바라보다가 잠이 들었던가? 마지막으로 시계를 것이 8시였는데, 그렇다면 시간 동안을 것이고 악몽을 것이었다. 정혁은 불편한 자세로 잠들어 뻐근해진 목과 어깨를 주물렀다. 그랬더니 혜성이 손을 내밀어 자신의 손을 치우고 대신 주물러주기 시작했다. 혜성의 손은 따뜻하다. 따뜻하고 얇은 손이 목덜미를 만지작대자 절로 눈이 감기고 기분이 좋아진다. 정혁은 일부러 능글맞게 신음을 내질렀다. 그랬더니 곧바로 찰싹 등을 때려온다.

 

  「뭐야! 변태 중늙은이 같은 소린!!

 

  「베이비, 지금껏 악몽을 꿨다고. 아직도 심란한데 그렇게 소리 지르지 , - 머리 울려.

 

  「악몽? 요즘 잠만 자면 그러더라? 무슨 악몽인데? 몸이 허해져서 그런가? 보약이라도 해달라고 내가 말씀 드려 볼까?

 

  「누구? 장모님한테?

 

  정혁은 다시 등짝을 얻어맞았다. 이번엔 아까보다 세게. 손이 매운 녀석. 셔츠가 얇았다면 틀림없이 손자국이 났을 거다. 정혁이 엄살을 부리자 혜성이 책상 위의 책을 가방에 정리해 담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 어떤 꿈이길래 그렇게 식은땀까지 흘리고 그래? 혜성은 가방을 챙기면서도 악몽에 대해 묻는다. 정혁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혜성에게 매번 민우에 대한 꿈을 꾼다고, 나에겐 그것이 무엇보다 악몽이라고, 꿈에서조차 멀어져만 간다고 말할 없었다. 말할 없고, 말하기 싫은 애매모호한 선상에 놓인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우리 떡볶이 먹고 들어갈까?

 

  최근 들어 부쩍 군것질이 혜성이었다. 독서실에서 공부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무언가를 먹고 들어갔다. 정혁은 작은 입으로 오물오물 무언가를 먹는 혜성을 보는 일이 즐거운 일이었으므로 거절한 적이 없었다. 독서실이 몰려있는 지역이라 유난히 포장 마차들이 주르륵 늘어서 있다. 혜성이 최고라고 골라둔 곳으로 들어가 그랬듯 오뎅과 떡볶이를 시켜놓고 앉았다. 자기 입보다도 같은 삶은 계란을 떡볶이 국물에 찍어 입에 밀어넣는 혜성을 보면서 정혁은 어느새 악몽은 잊고 유쾌한 기분이 되어버렸다.

 

  「넌 먹어? 내가 먹는 거만 쳐다보더라. -!

 

  혜성이 오뎅꼬치 하나를 꺼내 정혁에게 내민다. 별로 생각이 없었지만 정혁은 흔쾌히 받아 들고 먹었다. 혜성은 먹으면서도 이것저것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재잘재잘 수다 떨며 늘어놓았다.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면서 정혁은 대꾸를 해주었다.

 

  「아점마! 떡볶이 1인분 주세요!

 

  으이그.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있겠는가. 바로 독서실을 다니는 진은 시간쯤에 자주 만난다. 그것도 정혁과 혜성 둘이 오붓하게 분식을 먹고 있을 때면 자주. 혜성의 옆에 털썩 앉아 떡볶이가 나올 때까진 기다리지도 못하겠는지 혜성이 먹고 있던 오뎅을 빼앗아 먹는 진이다. 정혁이 말없이 바라보자 으엑, 치사해서 먹어, 라며 진은 과장된 표정으로 먹은 다시 토해내는 시늉을 해보였다. 능청스러움에 정혁은 어이없이 웃고 말았다.

 

  「전진, 국사 정리 했어? 생각해보니 그걸 했다. 보여줘.

 

  「이것이 문정팔이랑 어울리더니 아주 깡패가 되었구만?

 

  같은 반인 진과 혜성이 내일까지 해가야 한다는 국사 과제에 대해 소란을 피우며 대화를 했고 정혁은 가만히 혜성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전보다는 얼굴이 많이 밝아졌다. 밤마다 야참을 먹어서 그런 걸까. 적당히 살이 올라 보기 좋은 뺨이 포장마차의 백열등 아래 다소 붉게 물이 들어있다. 재잘재잘 그랬듯 진과 궁합이 맞는지 수다를 떠는 모습도 정혁에게도 다소 생소한 것이었다. 혜성은 하루하루 말이 많아졌고 명랑해지고 있는데 어쩐지 자신은 날이 갈수록 말수도 줄고 어두워지는 같은 기분이 들었다. 괜히 기분이 다시 우울해져 담배가 몹시 고파졌다. 하지만 혜성이 있기 때문에 참는다.

 

  「푸하하하- 정말? 진짜? 리얼리?

 

  정혁이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어느새 화제가 바뀌었는지 진은 뒤로 넘어갈 만큼 웃어제끼며 혜성을 취조하고 있다. 목이 타는 같은 갈증. 정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진의 것까지 먼저 계산을 마쳤다. 의아한 얼굴이 혜성을 보며 정혁은 먼저 집에 가야겠다고 말을 했다. 혜성은 정혁을 옆에 두고 너무 진이랑만 신나게 말을 했나 싶어 미안해졌다. 정혁은 아까 악몽을 꾸다 잠을 이후로 내내 얼굴이 좋아보이지 않았다. 11시가 되어가는 시간이었고 정혁은 아줌마가 다른 손님의 음식을 챙기는 틈을 얼른 혜성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진은 토하는 시늉을 해보여야 했다. 정혁과 혜성의 유난스런 작별인사를 나무라며 진은 열심히 수다를 떨었다. 하지만 정혁이 나가고 이후로 진의 말이 혜성의 귀에 들어올 없었다.

 

 

 

 

 

  집까지 거의 와서야 담배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편의점으로 발걸음을 돌리고 있는데 낯익은 그림자가 정혁을 덮쳐왔다. 정혁은 그림자를 0.01 만에 알아봤으며 그림자는 자신을 알아본 정혁을 0.1 만에 피해버렸다. 서글펐다. 억울하고 속상했으며 화가 나기도 했다. 정혁은 그림자의 뒤를 따랐다. 담배고 뭐고 머리에서 없어진지 오래다. 그림자는 원래 정혁의 것이었다. 그림자는 정혁을 따랐고 정혁도 그림자가 자신의 것과 일치되는 순간에야 행복했다. 순간도 그림자가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생각해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소중한 정혁의 그림자가 이젠 정혁만 보면 방향을 틀어 달아나 버린다. 정혁은 그림자를 밟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림자는 자신의 검은 성역 안으로 정혁의 하나 들이지 않으려 했다.

 

  「제발……!

 

  정혁이 힘없는 목소리로 애원하자 그제서야 그림자는 움직임을 멈추었다. 걸음만 가면 그림자를 잡을 있는 거리인데, 막상 그림자가 걸음을 멈추자 정혁은 다가가기 두려워졌다. 한동안 둘은 동상처럼 멈춘 상태로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정혁은 바쁘게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다. 맙소사,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지는 생각해보지 했다. 지난 동안 적이 없다고, 동안 도대체 어디서, 하고 있었던 거냐고 물어야 한다.

  그림자가 다시 천천히 걸음을 떼었다. 걸음마다 진득한 상념의 무게가 따라붙었다. 말없이 정혁은 뒤를 따랐다. 새로운 놀이터가 생겨 이젠 아무도 오지 않는 후미진 공터, 가로등이 고장났는지 온통 어둠뿐인 곳에서 그림자는 없어지고 실체가 나타났다. 하지만 어두워 보이지 않았다. 정혁은 답답해진 마음에 조급해졌다.

 

  「……얼굴 보여줘.

 

  「보고 있잖아.

 

  마치 아주 오랜 시간동안 들었던 것처럼 민우의 목소리는 생소하기 이를 없었다. 약한 비음이 실린 민우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정혁의 귀에 닿는 순간 녹아버렸다. 흐물거리는 감성을 다잡고 정혁을 힘을 주어 섰다. 발에 채이는 오래되어 걸쭉하게 굳은 모래의 느낌이 좋지 않았다. 민우는 먼치의 가로등 불빛이 닿지 않는 곳에 서있다. 정혁은 민우에게 발짝 가까이 다가가 그의 팔을 잡아 빛이 닿는 곳으로 끌어냈다. 미약한 조명 아래 드러난 민우의 얼굴은- 정혁은 격한 감흥에 사로잡혀 버렸다.

 

  「하, 독한 새끼. , 보지 않고 견딜 있었어? 대체 눈에 보이지 않았던 거야!!

 

  「……잘 지냈냐?

 

  「어떻게 따위 질문을 있지? 잘났군, 이민우.

 

  막상 자신에게 얼굴을 보여주고, 자신에게 말을 해주는 민우를 보자 마음이 한결 놓이면서 푸념 섞인 짜증만 내고 마는 정혁이었다. 민우는 마디 때마다 번이나 일그러지는 정혁의 얼굴을 보면서 그만 웃고 말았다. 바람 빠지는 소릴 내며 허무한 웃음을 내비치는 민우를 보다가 정혁은 창백한 얼굴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정혁의 손길을 고개를 돌려버림으로써 거절한 민우는 멈칫한 어색함에 주머니에 손을 넣어 익숙하게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정혁이 왜인지 잠긴 목소리로 나도 라고 읊조렸다. 민우는 담배 가치를 꺼내 정혁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불을 붙여 주었다. 길게 연기를 날린 정혁은 담배갑을 민우의 주먹을 내려다 봤다. , 지금 견뎌 하지 하는 거지? 그렇게 주먹을 쥐고 있는 거지? 의구심은 끝도 없지만 입은 담배로 막혀버렸다.

 

  「잘 돼가?

 

  뭐가? 아까처럼 말도 되는 질문이라면 집어 . 하지만 이번 질문은 그것보다 잔인한 질문이었다. 너의 러브-라이프. 민우가 담배를 모금 빨아들이며 대꾸했다. , 아주 돼가. 문제 없이 말야. 정혁의 잔뜩 받은 듯한 대답에 민우는 다시 웃고 말았다. 담배가 쓰다. 평소보다 쓰다. 폐부로 들어와 내장을 갉아먹는 것처럼 따갑다. 하지만 계속 빨아들였다. 가슴에 통렬한 고통의 바람이 분다. 정혁과 이렇게 말없이 담배를 태우는 것도 생각해 보니 상당히 오랜만이다. 정혁의 삐죽 빼죽한 머리를 바라보았다. 위압적인 강렬한 인상의 모습도. 특히 담배를 피우고 있는 정혁의 모습은 선이 꽤나 그럴싸하다.

 

  「잘 돼가고 있다면…, 어쩔 건데?

 

  「헛소리. 연애사는 나랑 상관없는 거야.

 

  「내 꿈에나 계속 나오지 말아줘.

 

  꿈에서라도 나와줘서 고마워. 비록 밤마다 네가 괴롭히는 바람에 잠을 없지만 그것 만으로도 만족해. 밖으로 말과 생각이 이토록 차이날 몰랐는데 자신이 지금 그러고 있었다. ? 작게 묻는 민우의 입술을 바라보다 정혁은 괜히 얘기를 했다고 생각했다.

 

  「네가 자꾸 꿈에 나와. 꿈에 나오지 않든?

 

  「……난 꿈을 꾸지 않아.

 

  거짓말. 거짓말만 늘었군. 그렇다고 우기고 싶었다. 뭐지 기분은, 밑지는 같은 기분이 드는데 따지고 보면 그럴 이유도 하등 없는데 말이다. 민우가 번째 담배를 입에 무는 순간 깜빡거리던 가로등 불이 환하게 들어왔다. 그러면서 그토록 자세히 눈에 담고 싶었던 민우의 얼굴이 보인다. 크게 달라진 점은 없는데 자꾸 어딘가 달라 보인다. 담배 필터를 빨아들이는 민우의 입술이 갑자기 붉게 도드라져 보인다. 갈증, 해결될 가능성 없는 갈증에 목이 마른 정혁은 다시 민우에게 담배를 달라고 말했다.

 

  「이러다 폐암 걸리겠어. 죽일 셈이냐?

 

  「뭐?

 

  「나랑 키스하고 싶지 않아? 지금 그러고 싶어, 그러지 하니깐 애꿎은 담배나 입에 물고 있는데 말야. 매번 이러다 보면 폐암 걸려서 죽을 지도 모른다고.

 

  웃고 마는 민우다. 웃느라 가늘게 휘어진 눈과 입술이 지금 보니 전보다 인상적이다. 민우의 웃음에 마음이 누그러진 정혁은 민우가 앉아있는 그네 앞으로 섰다. 그리고 허리를 낮춰 고개를 숙였다. 무표정하게 정혁이 그러도록 가만히 있던 민우가 손가락 사이에서 타들어가는 담배를 다시 입으로 가져가기 위에 손을 들었다. 하지만 이내 정혁의 손에 팔목이 잡혔다. 담배가 모래바닥 위로 떨어진다. 모래 위에서도 타들어가는 담배의 매캐한 연기를 내려다보다 민우가 고개를 들었다. 철컹거리는 그네 소리가 웬지 정겨우면서도 애처롭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던가. 그렇다면 정혁의 마음속엔 내가 있는 건가. 정혁의 눈동자 가득 자신의 모습을 보며 민우는 자조했다. 정혁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혜성이한테 그런 말들로 애교 떠냐? 새로운 모습인데, 문정혁.

 

  눈에 띄게 멈칫하는 정혁을 보며 민우는 작게 한숨을 내질렀다. 정곡을 찌른 것일까. 자신의 앞에 그네 줄을 잡은 멍하게 서있는 정혁의 얼굴을 바라보기도 싫다.

 

  「성자라도 되는 신경 쓰이지 않을 것처럼 너야. 너한테 양해를 구한 적도 없어. 너도 나한테 그런 마디 하지 않았잖아. 너무 쉽게 넘어간 거라 생각해? 머리 속에 어떤 생각들이 숨겨져 있는지 알고 싶어. 정말 궁금해.

 

  힘없이 무릎을 꿇은 주저앉고 마는 정혁을 보며 민우는 일어섰다. 맙소사, 이렇게 주저앉으면 되는 거잖아. 얼마간 환하게 들어온다 싶던 가로등 불이 깜빡거리더니 다시 꺼져버렸다. 둘은 다시 미약한 어둠에, 침묵에 잠겼다. 차가운 모래바닥에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로 있는 정혁을 향해 말했다.

 

  「일어나.

 

  ………….

 

  「네가 그렇게 있는 정말 보기 싫어. 일어날 거면-

 

  「너, 다른 만나? 이젠 보기도 싫어?

 

  갑자기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정혁이 대들 달려들며 묻는다. 유치해. 이거 정말 바보 아닐까? 정혁이 기껏 내뱉은 질문들은 아주 유치하고 저질이었다. 하지만 충분히 유쾌하고 즐거운 질문이기도 했다.

 

  「네 수준으로 놀아줘? , 말대로 다른 생겼으면 축하라도 해주려고? 아직도 정신을 차려?! 이렇게 흐느적대지 말랬잖아! 이래서 보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도 이딴 식으로 거면, 생각 하지 .

 

  가차없는 말들을 늘어놓고는 민우는 어둠 속으로 발길을 돌려 사라져버렸다.  

  젠장-. 이건 꿈보다 하잖아. 빌어먹을 가로등은 장난이라도 치려는 다시 밝아졌다.

 

  대체 이리 불성실한 것일까. 대체, 누구에게 충실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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